최근 넷플릭스 ‘참교육’이라는 드라마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의 자극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교육의 본질, 그리고 무너져 가는 역할의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는 이상할 만큼 기본이 어려워졌다. 선생님은 선생님답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말조차 조심스럽게 꺼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교육은 관계이고, 관계에는 반드시 역할이 있다. 역할이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진다.
농구를 보면 이해가 쉽다. 과거 농구는 포지션이 분명했다. 포인트가드는 경기를 조율하고, 슈팅가드는 득점을 만들고, 센터는 골밑을 지켰다. 그러나 현대 농구는 달라졌다. 빅맨도 3점슛을 던지고, 가드도 리바운드와 수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포지션리스 농구라는 말처럼, 이제 선수들은 하나의 고정된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된다. 포지션이 유연해졌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 농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역할의 이해다. 내가 지금 공격을 해야 하는지, 수비를 해야 하는지,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팀원을 살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포지션은 바뀔 수 있지만,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이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 방식은 바뀔 수 있다. 시대에 맞게 수업 방법도 변해야 하고, 학생과의 소통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과 학생의 역할까지 뒤섞여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학생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학생은 선생님을 평가하고 소비하는 고객이 아니라, 배우고 성장해야 할 존재다. 학생을 존중하는 것과 학생에게 끌려가는 것은 다르다. 소통하는 교육과 무너진 교육은 다르다. 학생의 인권을 말하는 것과 학생의 무례함을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학생 중심으로만 해석하면, 결국 교사는 침묵하고 학생은 배움을 잃는다.
선생님이 단호함을 잃으면 교실은 방향을 잃는다. 학생이 배우려는 태도를 잃으면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질문은 필요하다. 의견도 필요하다. 그러나 배움 앞에서의 겸손과 기본적인 예의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농구 경기에서 모두가 슛만 던지겠다고 하면 팀은 무너진다. 아무도 수비하지 않고, 아무도 리바운드를 잡지 않고, 아무도 패스를 하지 않으면 경기는 이길 수 없다. 팀이 강해지는 이유는 모두가 돋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알고 책임지기 때문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가르쳐야 하고, 학생은 배워야 한다. 이 말이 낡은 말처럼 들린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다.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책임에서 나온다. 배우는 사람의 태도는 복종이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다. 이 기본을 부정하면 교육은 더 이상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불편함을 피하는 서비스가 되고 만다.
현대 농구의 포지션은 변한다. 시대에 따라 전술도 바뀌고, 선수의 역할도 확장된다. 그러나 교육에서의 본질적 포지션은 함부로 바뀌면 안 된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어야 하고, 학생은 학생이어야 한다. 서로의 자리가 존중될 때 교육은 바로 설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좋은 교육’이 아니다. 무너진 역할을 다시 세우는 교육이다.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하고,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기준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편하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 바르게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농구에서 포지션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팀을 위한 역할이 무너지면 경기는 끝난다. 교육도 그렇다. 방식은 변해도 된다. 그러나 선생님의 역할과 학생의 역할이 무너지는 순간,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참교육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 자기 역할을 책임지는 것, 그리고 배움 앞에서 기본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붙잡아야 할 교육의 출발점이다.

#사진 - 이형주 교수 제공


















